힘든 유학 생활 그리고 자존감

현재 영국에서 살고 있지만 매주 ‘무한도전’과 ‘복면 가왕’을 챙겨서 본다. 예능 프로를 보면서 신나게 웃다 보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 시청한 ‘복면 가왕’에서 김나영이 부른 러브홀릭스의 ‘Butterfly’를 듣는 순간 유학생이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어리석은 세상은 너를 몰라
후회 속에 감춰진 너를 못 봐
나는 알아 내겐 보여
그토록 찬란한 너의 날개

겁내지 마 할 수 있어
뜨겁게 꿈틀거리는 날개를 펴

날아올라 세상 위로’

유학을 가기 전, 1년 반 동안 영어 학원에 거의 살면서 아이엘츠 공부를 했다. 당시에 혼자서 계속 공부만 하다 보니 정신이 황폐해지는 듯 했고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자꾸 빠졌다. 학교 오퍼를 받고 나서 ‘힘든 날은 이제 안녕’일 줄 알았다. 영국 친구도 많이 사귀고 신나게 공부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막상 학기를 시작하니 또 다른 종류의 힘든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국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해외 경험이 없었던 나에게 영국 본토 영어는 새로운 세계였다. 한국에서 했던 영어 공부는 학교를 지원하기 위한 점수 제출용일 뿐이었음을 깨달았다.


어디 가서 못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던 나는 영국으로 오고나서 완전히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한국에서는 밝고 적극적인 성격이었지만 여기에선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있었다. 나보다 준비한 건 별거 없으면서 말로 뻥튀기하는 영국 애들을 보면서 괘씸하고 약오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머릿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지만 영어로 표현하기에 항상 부족함을 느꼈다.

팀 미팅이나 세미나가 있을 때면 전날부터 걱정하면서 잠들었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긴장 상태가 지속되었다. 수업을 들으러 걸어가는 동안에는 상대방이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모두 표현하도록 해달라고 계속 기도하곤 했었다. 영어 실수를 연발한 날에는 집에 가서 자기 전까지 그 일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중엔 그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나 자신이 지겹기까지 했다. 한국에 20년 넘게 살다가 온 토종 한국인이 네이티브처럼 영어를 구사하는 게 불가능한 일인데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이젠 잘할 때도 됐는데 제자리걸음인 듯한 느낌이 들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고 스스로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한없이 자괴감에 빠졌던 건 남들에게는 관대하지만 스스로에게는 날카롭고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못 했던 내 성격도 한몫했으리라.)

그래도 한편으로는 ‘Butterfly’의 가사처럼 언젠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 거라며 스스로 다독이곤 했다. 세상이 지금 나를 몰라주는 것 같이 보여도 언젠가는 나의 진가를 알아주는 날이 올 거라면서. 4년간의 유학 생활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건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깨닫기 전에는 밑도 끝도 없이 남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어느 날 수업을 듣고 집에 왔는데 내가 했던 실수를 생각하면서 또 정신적으로 자학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문득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해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타국에 나 홀로 와서 맨땅에 헤딩을 하며 외국인 유학생으로 살아가는 법을 처절하게 배우고 있었다. 어떤 하루는 좀 지낼만했다면 그 다음날은 다시 최악의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잘하고 있다며 말해주는 이가 없었다. 진정한 위로는 기껏해야 한국에 있는 아빠와 통화할 때뿐이었다.

나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유학을 온 것이지 이렇게 정신적으로 자학하려고 온 게 아니었다. 매일 외부 환경(언어, 학교생활 등)으로부터 이미 스트레스를 충분히 받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더 못살게 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의 크기는 계속 작아질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스스로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는 것을 그만하기로 했다. 매일 자기 전에 ‘못해도 괜찮아’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잘했어’ ‘넌 소중한 존재야’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이는 실제로 자존감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정신적으로 자학하는 건 일종의 습관과도 같아서 이 습관을 없애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는 말이나 태도에 휩쓸려서 순간 내가 초라하게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일수록 스스로를 토닥토닥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단단히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이렇게 단단해진 마음은 힘들 때마다 쉽게 쓰러지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토대가 된다. (‘Butterfly’의 가사처럼) 이 세상이 거칠게 막아서도, 세상이 차갑게 등을 보여도, 꺾여버린 꽃처럼 아플 때도, 쓰러진 나무처럼 초라해도, 언젠가 나의 진가를 발휘할 날이 올 것임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자.


2 comments Add yours
  1. 와… 스트레스가 엄청나셨을거같아요… 제가 어디서 들은 말인데 ‘네이티브중에도 영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자는 없다.’ 는 말을 듣고나서는 내가 하는 실수쯤이야ㅡ에이 별거아이었네ㅡ 하고 저를 다독일수있었답니다. 힘들다는 건 또 반성하고 성장하니 힘들어하는건 나쁜게 아니에요. 괜찮아요. 글쓴이 말씀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않는게 제일 중요합니다.

  2. 정말 공감가는 글이네요… 제대로 유학생활 시작한 건 이제 고작 1년 차인데, 워낙 지금 하는 공부에서 다른 학생들과 달리 배경지식도 부족하고 영어도 배우는 단계라 수업을 듣고 이해하는 것부터 발표, 혹은 심지어 제대로 표현해서 글쓰는 게 참 어렵고 힘들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외국인이고 아직 시작단계에 있다는 걸 감안해서 인내해야 하는 걸 알지만, 앞서가는 친구들과 내가 겪는 이런 어려움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볼 때면 스스로가 이곳까지 와서 뭐하고 있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되는 거 같아요… 사람인지라 성취감을 느끼며 실패를 맛보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인데, 제 노력의 부족인 탓이라 해도 성취감이라는 것을 느껴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고, 글쓴이분처럼 내가 스스로에게 너무나 높은 기대치를 너무 이른 시기에 바라는 건가 의문이 듭니다.. 참 욕심이 있어서 그렇다고 스스로에게 원하는 기대를 낮추고 싶지도 않으니 원.. 하하… 이런 얘기를 가족이나 다른 누군가에게 얘기해도 직접 경험해봤거나 상황을 잘 아는 것이 아니면 잘 이해하기 힘들어 하더라구요… 여러모로 유학생활이 정말 쉽지 않고 처음보다는 분명 많은 것들이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힘들고 앞으로도 이런 시간들이 계속 되리라는 걸 느낍니다.. 이래서 정신건강을 챙기고 마인드 컨트롤을 꾸준히 해야 그나마 버티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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