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런던 디자인 뮤지엄 전시, Fear and Love : Reaction to a Complex World

디자이너이자 사업가인 테렌스 콘란이 템스 강변에 디자인 뮤지엄을 설립했을 때만 해도 세상은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다. 1989년에 선보인 첫 번째 전시(Commerce and Culture) 주제가 ‘인더스트리얼 프로덕트의 가치’였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디자인 뮤지엄은 대중들에게 좋은 디자인이 무엇인지 알리고 교육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의 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폰부터 이케아 가구까지 디자인은 이미 우리 생활에 익숙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사회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이에 따라 디자인의 역할도 진화해왔다. 시각적으로 보기 좋게 만드는 포장의 기술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반영하는 수단으로.

2016년 11월, 2년간의 연장 공사 끝에 드디어 런던 디자인 뮤지엄이 켄징턴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존 퍼슨(John Pawson)이 디자인한 모던한 건축물 뿐만 아니라 훨씬 넓어진 공간과 토크 및 워크숍이 열리는 교육 센터까지 예전의 디자인 뮤지엄과 비교하면 많은 부분들이 달라져 있었다. “겉모습만 변한 게 아니라 콘텐츠도 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디자인 뮤지엄의 새로운 헤드 큐레이터인 저스틴 마거크(Justin McGuirk)가 말했다. 새로운 뮤지엄이 오픈하던 날 그가 기획한 ‘Fear and Love : Reaction to a Complex World’ 전시도 함께 막을 올렸다. 그는 이 전시가 뮤지엄 프로그램이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을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술적인 변화와 프라이버시, 환경 등 사회적인 이슈를 주제로 작업하는 11명의 디자이너에게 인스톨레이션 작업을 부탁했고 그 결과 우리의 삶을 둘러싼 정치, 경제, 환경, 기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들로 전시가 구성되었다.



Fear and Love 전시에서 시선을 가장 많이 끌었던 작품 중 하나는 매들린 개논(Madeline Gannon)이 디자인한 ‘Mimus’라는 이름의 커다란 로봇이다. 주변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도록 로봇을 프로그램화 시킨 탓에 사람이 다가가면 애완동물처럼 가까이 와서 반응을 하고 춤을 추기도 한다. 현재 우리는 인공 지능 로봇이 인간의 직업을 빼앗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기계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디자이너는 인간들이 로봇과 감정적인 유대를 가지게 된다면 불안감을 극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Mimus’를 선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 디자이너 크리스틴 마인더츠마(Christien Meindertsma)는 버려진 의류 처리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텍스타일을 재활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녀는 컬러와 소재에 따라 섬유를 분류하는 기계를 사용하여 버려진 1000여 개의 울 점퍼를 가느다란 실로 변환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수집된 실들이 색깔 별로 전시되어 있고 벽에는 점퍼의 스와치가 나열되어 있었다. 점퍼에 달려있던 태그에 있는 소재 정보와 기계가 분석한 것을 각 스와치 옆에 비교하여 보여주었는데 두개의 정보는 일치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태그에는 100% 메리노 울이라고 적혀 있지만 기계로 분석한 결과 40% 아크릴이었다. 이는 우리가 구입한 옷에 제시된 소재 정보가 실제로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리사이클링 작업을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설립한 건축 스튜디오 OMA는 ‘The Pan-European Living Room’을 통해 유럽의 이상적인 모습을 표현하였다. 스웨덴 이케아 책장부터 이탈리아 카스티글리오니 램프까지 EU 회원국 28개 나라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가지고 거실을 꾸몄다. 거실 뒷면에는 유럽 국가의 국기들을 일렬로 나열한 바코드 블라인드가 전시되어 있다. 씁쓸하게도 영국 국기가 있어야 할 자리는 브렉시트로 인해 비어 있었다.

이 밖에도 몽골에 사는 유목민들이 도시 생활에 적응하는 방법을 고찰한 루럴 어번 프레임워크(Rural Urban Framework)의 작품부터 패션 디자이너 후세인 살라얀(Hussein Chalayan)의 사람의 심장 박동과 스트레스 레벨에 반응하는 웨어러블 테크 액세서리 등 다양한 인스톨레이션들이 전시되었다.

디자인 뮤지엄을 아름다운 오브제를 전시하는 장소로만 간주하는 건 낡은 발상이다. 디자인의 변화하는 역할을 수용하고 이를 프로그램에 반영해야 함을 디자인 뮤지엄은 이미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전시를 보는 내내 디자인 뮤지엄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질문을 방문객들에게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사회를 둘러싼 이슈뿐만 아니라 담론까지도 이끌어내고 싶었던 것일까? 이게 새로운 디자인 뮤지엄 프로그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번 Fear and Love 전시는 새로운 뮤지엄 오프닝과 맞물려 충분히 성공적인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디자인 뮤지엄의 (실험적이기 보다는 안전했던) 전시와 다른 모습을 보여줬기에 앞으로의 프로그램들이 더욱 기대되는 바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