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1인 기업으로 전향하게 된 이야기 (1)

#제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1인 기업’으로 전향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글입니다. 이 글을 통해 ‘하던 일을 그만두고 무조건 꿈을 좇아라’라는 식의 말할 의도는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퇴사를 한다는 건 구체적인 계획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리스크까지 감내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그런 말을 한다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 * *

2017년, 내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기로. 이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수없이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기를 반복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5년 후, 10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이길 원할까?’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할까?’
‘이런 결정이 나에게 주는 영향을 무엇일까?’

끊임없이 분석하고 고민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결단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결코 쉽지 않았다. 안정적인 직장과 매달 정해진 날에 나오는 월급, 직장이 주는 소속감. 이들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월급은 마약과도 같다’는 말이 있다. 누가 한말인지 모르겠지만 간결하면서 정확하게 월급을 표현한 문장이다. 진심으로 감탄한다.

무슨 일이든지 인간은 자기가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모른다. 유학생일 당시 한국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을 온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당시엔 몰랐다. 그 사람들이 영국에 오기까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했다는 것을.

유학하는 동안 최대한 많은 work experience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지겨울 정도로 열심히 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온라인으로 인턴십 공고를 검색하고 CV와 커버레터를 쓰고 쉬는 날에는 인터뷰 스크립트를 작성한 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소리 내서 연습했다.

남들은 그까짓 거 무급 인턴십이지 않냐고, 쉽게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우습게 보겠지만 난 그 기회를 얻기 위해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했다. (패션과 아트 쪽은 유급 인턴십을 찾기 힘들다) 내가 지원했던 인턴십은 한국어를 한다는 걸 특별히 플러스 요인으로 쳐주는 곳이 아니었다. 영국인, 유럽인들과 같이 동등한 입장에서 지원했다. 내가 그들보다 영어가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연습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중에 유학 시절을 되돌아봤을 때, 취업을 하고 나서 무언가 만족스럽지 않았을 때 ‘그때 열심히 할걸..’ 하면서 스스로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시 영국으로 오기 힘들 것이란 걸 알고 있었고 내가 누릴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다.



다양한 곳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인턴으로 일하면서 ‘내가 이런 일을 할 때 즐거워하는구나’, ‘이런 업무는 내가 거뜬히 해낼 수 있구나’, ‘이런 일은 내가 어려워하는구나’ 등. 나의 적성과 능력, 흥미에 대해 직접적으로 알아갈 수 있는 기회였다. 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업무 이외에도 근무 환경과 분위기, 상사 스타일 등 여러 요소들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가족같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회사도 있었고, 직원들을 닦달하고 끊임없이 마이크로매니지(micromanage)하는 상사를 보면서 내가 그곳에 일시적으로 머무는 인턴이라는 사실을 천만다행으로 여긴 적도 있었다. 여러 인턴십을 거치면서 깨달은 것은 (머리로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꿈같은 회사, 완벽하게 내 맘에 드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다’였다. 그 회사를 얼마나 ‘오래’, ‘잘’ 견딜 수 있는가 아닌 가로 나눠질 뿐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인턴십을 했던 회사에서는 정직원 못지않게 업무를 받아서 일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사무실로 출근하던 날, 날씨는 화창했고 햇살과 나무들은 아름다웠다. 사무실에 틀어박혀서 데드라인에 쫓겨 일하는 내 모습이 문득 가엽게 느껴졌다. ‘하루하루가 이런 패턴이라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햇살을 느끼는 자유. 자연을 즐기는 자유. 이런 건 돈 내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데..  나에게 공짜로 주어진 아름다운 것들을 내 맘대로 즐길 수 없다는 사실에 우울해졌다. 회사가 정한 규정에 묶여서 9시 출근 6시 퇴근하는 삶. 졸업 후에 이런 삶을 살게 될 것을 생각하니 답답했다.

석사를 마치고 한국에 7개월 정도 머물면서 휴식과 안정을 취했다. 한국에 있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사람이 우리 언니였다. 언니는 6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이면서 영어교육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이기도 하다. 언니의 직업은 영어 선생님인데 집이 언니의 일터였다. 학생들이 언니 집으로 오면 영어를 가르치고 유치원이 끝나는 시간이 되면 조카를 직접 데리고 온다. 집에서 일하는 언니는 출퇴근 시간에 지옥철을 경험할 필요가 없었다. 일하다가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땐 바로 옆방에 가서 편안하게 두 다리 쭉 뻗고 누워서 쉬었다. 내가 일할 땐 고작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잠시 눈 붙이는 게 다였는데. 나도 언니처럼 자유롭게 일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곳에서.

한국에 있는 동안 비자를 받아서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본격적으로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전공에 맞는 포지션에 모두 지원했다. 솔직히 말하면 대단한 곳에서 치열하게 일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매일 긴장 상태로 살다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부서질 거란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간신히 건강을 회복해서 왔는데 다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남의 회사를 위해서, 나의 건강까지 잃어가면서 일하고 싶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누구나 우러러보는 대기업에 들어가서 번지르르한 잡 타이틀을 달고 쉼 없이 일하는 것보다 차라리 단순노동을 하면서 적당히 돈 받고 스트레스 덜 받으며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난 내 건강과 행복이 더 중요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저녁을 먹고 편안하게 쉬는 시간이 훨씬 중요했다.

구직활동 끝에 글로벌 리서치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처음 3개월은 좋았다. 일주일에 두 번 재택근무와 칼퇴근이 가능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괜찮았다.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깨달은 점은 한가지가 바로 ‘인간은 변화를 싫어하는 동물’이라는 것. 인간은 자기에게 익숙하고 쉬운 것을 선호한다. 입사한지 1년 정도 지나자 삶에 안주하고 현재에 머물고 싶어 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부서로 옮겨볼까도 생각했었다. 부서에 공석이 나면 내부 지원자를 우선시해서 선발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다른 팀으로 옮길 수도 있었다. 사실 그렇게 해서 부서를 옮기는 사람들도 많았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그 일을 하게 되면 과연 좋아할까? 해당 업무가 나에게 맞을까?’ 대답은 ‘No’였다. 직장에 다닌 지 1년도 되지 않아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 화창한 날, 인턴으로 일할 때 느꼈던 감정과 예상들은 현실이 되어 있었다. 오피스 블록에서 컴퓨터 스크린을 바라보며 9시부터 6시까지 갇혀있는 삶.

의미 없는 회사 업무에 나의 소중한 시간을 쓰는 게 아까웠다. 고여있는 물이라는 느낌. 앞으로 전진하는 게 아니라 계속 한 곳에 머물러 있는 느낌. 시간의 노예, 돈의 노예가 되어가는 느낌. 다른 회사에 다닌다고 해서 다를 건 없어 보였다. 비슷하거나 아님 더 안 좋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내 인생이 이런 식으로 계속 소모된다면, 남(회사)을 위해 일만 하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게 미래의 나의 삶일까? 지옥철을 경험하며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저녁 먹고 피곤에 절어서 잠들고.. 주말에는 집에서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다시 월요일이 되면 출근하고.. 내가 그렇게 즐기던 문화생활은 어디로 갔을까.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 거기다가 내가 가보지 않은 길,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데 점점 겁쟁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퇴사 후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으로 전향하게 된 이야기 (2) 로 이어집니다.

 * * *

※ 영국에서 패션마케팅 공부하기 개정판 출시! ※

‘영국에서 패션마케팅 공부하기’는 저의 3년간의 경험이 담긴 책입니다. 이번 개정판을 작업하면서 전반적으로 새로운 내용뿐만 아니라 이해를 돕기 위해 학교 프로젝트 및 인턴십, 유학 생활 관련 이미지도 추가되었습니다. 디자이너 지수님의 손을 거쳐 예쁜 북으로 재탄생되었어요.

  • [영국에서 패션 마케팅 공부하기] eBook 구매하기
  • [영국에서 패션 마케팅 공부하기] eBook 미리보기

개인적으로 상당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제작한 책입니다. 여러분과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이 책을 통해 저와 커피 한잔하면서 영국 패션마케팅 수업과 유학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느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