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1인 기업’으로 전향하게 된 이야기 (2)

(퇴사 후 ‘1인기업’으로 전향하게 된 이야기 (1) 에서 이어집니다.)

내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 지식, 스킬들이 아까웠다.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 인생을 사무실에서 줄구장창 허비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때가 왔음을 느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챕터를 생각해보아야 할 때.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의 마음의 소리를 듣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다. 그리고 내가 찾은 대답은 이거였다.

“시간의 노예가 아니라 내가 시간을 장악하고 싶다.”

“자유.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나도 안다. 꿈같은 소리라는걸. 그래도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면서도, 길을 가면서도, 주말에도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물었다. 성향, 관심사, 가치관, 장점, 부족한 점, 삶의 목표 등을 상세하게 분석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나만 볼 수 있는 사적인 블로그에 평소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현실 가능성과 관계없이 막연하게 하고 싶은 일들을 메모하곤 했다 (지금도 하고 있고). 그동안 블로그에 적어 놓은 글들을 다시 한번 쭉 훑어보았다. 거기에 적힌 내용들을 정리해보니 대략 6가지로 추릴 수 있었다.

  • 패션/아트/디자인/라이프를 주제로 글 쓰는 사람
  •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
  • 강의/강연하는 사람
  • 큐레이터
  • 트렌드 예측 전문가
  •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진행자

난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남들에게 알려주는 걸 좋아한다. ‘과거의 나쁜 경험조차도 현재하고 있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오래 살진 않았지만 그동안의 경험들과 그것을 통해서 얻은 교훈들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멘토링도 하고 싶다. (*2019년 업데이트: 대학에서 가르쳤던 학생들을 상대로 멘토링 프로그램 운영 중)

또한 학교에서 패션 마케팅과 큐레이팅을 전공할 때 즐겁게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몰랐거나 새로운 걸 알아가는 과정 자체를 즐겼던거 같다. 논문, 아티클 등 여러 가지 자료들을 읽고 리서치하는 부분이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어렵게 씌인 아카데믹한 지식과 정보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전달하는 일을 하고 싶다. (*2019년 업데이트: 다양한 온라인 프로그램을 런칭해서 내가 가진 지식을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렇게 대략 큰 틀이 잡혔고 현재로서는 이 범위를 크게 벗어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다른 일을 할 가능성도 여전히 열어두려고 한다. 위에 저렇게 적어놨지만 막상 해봤을 때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생각보다 더 좋아할 수도 있다. 비유를 하자면 지금 나의 상태는 형태가 잡히지 않은 물체라고 볼 수 있다. 지속적으로 다양한 분야를 시도해보고 나의 가능성과 적성을 탐구해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형태를 잡아갈 것이다.

내가 가진 장점

난 추진력이 강한 편이다. 한번 목표를 세우면 그걸 달성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고 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반드시 옮기려고 한다. 분명한 목표가 설정되면 그에 맞게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 메모광 기질도 있는데 모든 걸 꼼꼼하게 기록하고 체계적으로 조직하는 능력이 있다. 긍정적인 마인드도 장점 중의 하나.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 경험을 통해 내가 깨달은 점, 배운 점을 찾아내서 인간으로서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괴로움을 승화(?) 시키는 편이다. 이외에도 공감 능력과 성실함 등이 있다.

예민함

솔직하게 말하겠다. 난 예민한 성격을 갖고 있다. 난 남들이 느끼지 못하고 쉽게 지나치는 미묘한 것들을 잡아낸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스트레스를 쉽게 받는 편이다. 사람들과의 만남에 있어서도 일대일 만남을 선호한다. 사적인 만남에서 사람 수가 4명 이상이 되면 자연스럽게 말수가 적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말을 할 때면 내가 내뱉은 단어들이 허공에 의미 없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을 만나기 싫어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무척 중요하다.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해 많은 영감을 받고 좋은 사람을 만나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기 때문에 이런 만남은 정말 소중하다. 다만 사람들을 만날 때 나만의 한계 (limit)가 있는데 남들보다 그 한계가 일찍 와서 쉽게 지친다.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홀로 생각을 정리하고, 사색하는 시간.

또한 혼자 또는 소수의 사람들과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여럿이서 일하는 것, 그룹워크가 주는 장점에 대해선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단지 내가 일하는 스타일과 내 성격에 맞지 않을 뿐이다. 외향적인 사람이 되어보려고 목소리를 크게 내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등 부단히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내린 결론은 타고난 천성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다니는 건 일종의 고문과도 같았다.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녹초가 되었고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 예민한 성격이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동안 경험을 쌓아왔던 분야가 (마케팅,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사람들을 계속 만나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이 요구되었고 이런 업무들을 해내려면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일하기가 좀 더 수월했을 뿐이다. 사실 예민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장점 또한 많다. 난 상대방의 마음과 의도를 쉽게 읽어내고 남을 배려하는 편이다. 이런 예민함이 앞으로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콘텐츠를 제작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2019년 업데이트:  인간 관계가 좁아질 수도 있다는 염려는 트렌드 스터디 그룹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해결되었다)

유튜브 채널

퇴사하기 전 충분한 리서치를 한 뒤 앞으로 5년간 어떤 주제의 콘텐츠를 제작할지 큰 틀을 잡고 장단기 계획과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웠다. 어떤 플랫폼을 사용할지도 생각해보았다. 특정 서비스를 처음부터 제공하기보다는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 스킬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 다닐 당시 이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그걸로 충분치 않다고 느꼈다. 텍스트 위주의 콘텐츠보다는 이젠 영상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The Drum 기사, Tubular Insights 기사). 디자이너로 일하는 친구도 영상을 제작하는 게 더 영향력이 있을 거라며 비디오를 만들어볼 것을 추천했다. 당시에 비디오 에디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까짓것 배우면 되지’라고 생각했고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한 달간 영상 제작에 대한 온라인 강의를 들었고 그로부터 한 달 뒤 유튜브에 비디오를 게시 할 수 있었다. (*디자인버터 유튜브 채널: https://goo.gl/t9j4VF)

크리에이터 (Creator)

크리에이터. 이걸 나의 새로운 직책(job title)으로 정했다. 이 단어가 모호하다는 거 나도 안다. 주변사람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로부터 나의 직업에 대한 질문을 받을 것이다. 솔직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한 단어로 압축해서 표현하는게 쉽지 않다. 온라인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 외에도 전시 기획도 하고 앞으로 강의도 할 계획인데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있는(하고자 하는) 일을 포괄적으로 지칭할 수 있는 단어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크리에이티브 한 분야에 있으면서 무언가(글, 비디오, 온라인 클래스 등)를 계속 만들어내는 일이니 ‘크리에이터’라고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크리에이터라고 말했을 때 여전히 상대방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면 뭐 어쩔 수 없지. 사실 뭐라고 불리든 상관없다. 그저 누군가 물어보면 대답해줄 단어가 필요했던 거니까.

*   *   *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확신과 자신감이 들었을 때 직장을 그만두었다. 변화를 위해 결심을 했고 그것을 실천하는 용기를 냈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많이 포기해야 했던 건 경제적인 부분이었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일). 이미 필요한 건 다 있고 물건에 집착하는 편이 아니어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문화생활을 하고 싶을 땐 무료 이벤트와 Museum Association 카드를 활용하고 있다. (Museum Association Card: 매년 멤버십 비용을 내면 영국에 있는 뮤지엄과 갤러리 (유료 전시 포함)를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혼자 일하기 시작한 뒤로 매일 시행착오를 하며 배우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워드프레스 웹사이트에 팝업 창 하나 띄우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여러 플러그인을 실행해봤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무엇이 잘못된 건지 다시 검색해서 다시 시도해보고.. 이렇게 하다 보면 하루가 그냥 지나가버릴 때도 있다. 비디오를 에디팅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온라인 강의를 들었지만 확실히 직접 만들어볼 때 실력이 느는 것 같다. 원하는 효과를 넣으려면 여전히 튜토리얼 영상을 검색해서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런 게 싫지 않다. 왜냐하면 이건 온전히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남’이 아닌 ‘나’를 위해 이런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다. 지루하고 느리게 느껴질지라도 언젠가 이 모든 경험들이 자산이 될 것임을 알고 있다.

내년에 한국에 가게 되면 다양한 주제로 오프라인 강연에 도전해볼 계획이다. 커피숍이든, 복합 문화 공간이든, 대학교 등 어디든 가서 해볼 참이다. (*2019년 업데이트:  작년부터 한국에 있는 대학교에서 마케팅 수업를 맡아서 강의 시작 & 이외에도 다른 대학교에서 ‘디자인/패션/공예/리테일 트렌드’를 주제로 특강할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얻고 있음)

또한 전 세계의 사람들로 독자층을 넓힐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것의 첫 출발이 유튜브 비디오인데 영어로 제작하고 영어/한국어 자막을 넣고 있다. (*2019년 업데이트:  ‘영국에서 패션 마케팅 공부하기‘ 이북을 중국어로 번역 완료. 이번 해에 중국 학생들을 상대로 배포할 예정)

매일 스스로에게 말한다.

’때가 오고 있다, 나의 진가를 발휘할 날이 오고 있다’라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매일 신나는 것만은 아니다. 24시간 일 생각이 떠나지 않을 때가 많고 혼자 일하기 때문에 스스로 계속 동기부여(self-motivated)를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내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건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사실 이런 건 퇴사하기 전에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 때문에 스스로 감내해야 함을 알고 있다.

진심으로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물가와 집세 비싸기로 소문난 런던에 잠 잘 곳이 있고 신선한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정도의 돈이 있으며 사지 멀쩡하게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두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 거기다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분명히 알고 그걸 할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것.

이런 삶을 살 수 있다는 거 정말 흔치않다. 정말로.

* * *

※ 영국에서 패션마케팅 공부하기 개정판 출시! ※

‘영국에서 패션마케팅 공부하기’는 저의 3년간의 경험이 담긴 책입니다. 이번 개정판을 작업하면서 전반적으로 새로운 내용뿐만 아니라 이해를 돕기 위해 학교 프로젝트 및 인턴십, 유학 생활 관련 이미지도 추가되었습니다. 디자이너 지수님의 손을 거쳐 예쁜 북으로 재탄생되었어요.

  • [영국에서 패션 마케팅 공부하기] eBook 구매하기
  • [영국에서 패션 마케팅 공부하기] eBook 미리보기

개인적으로 상당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제작한 책입니다. 여러분과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이 책을 통해 저와 커피 한잔하면서 영국 패션마케팅 수업과 유학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느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