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수년 전에 유학 생활하면서 힘든 점에 대해 블로그에 글을 올린 적 있어요.

제가 그 글 왜 썼는지 아세요? 너무 답답해서요. 유학하면서 봤던 사람들 사실 엄청 힘들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게 너무 답답해서요. 제가 유학 시작하고 나서 2년은 완전 암흑기였어요. 마음 맞는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고 기숙사 방문 밖에만 나가면 다시 사람들과 부딪히며 상처받고 괴로운 일이 시작되니까 밖에 나가기 싫었어요. 수업 끝나고 집에 와서 과제 하면서 운 적도 많았어요. 사람들이 괜찮냐고 물어보면 괜찮다고 답했어요. 솔직히 하나도 괜찮지 않았어요. 그때 저만 적응 못 하는 줄 알고 더 우울했었어요. 근데 알고 보니 다들 힘들어 하고 있더라구요.




영국으로 오기 전, 그 흔한 일본도 못 가보고 영국에 와서 바로 공부 시작했어요. 25년 동안 한국에서만 살다가 바로 학사 시작하니 엄청 힘들던데요? 어디 가서 못한다는 소리는 안 듣고 25년 살았는데 갑자기 투명인간 취급당하고 말 한마디 못하고 무시당하니까 엄청 속상하고 화나던데요?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유학생이 다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전 그 사람들이 저보다 해외 경험도 많고 영어도 잘해서 어려움 없이 잘 지내는 줄 알았어요. 웃긴 게 알고 보니까 그게 아니던데요. 그 사람들도 엄청 힘들면서 모두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었던 거였어요. 힘든 게 있으면 힘들다고 표현하는 거 괜찮아요. 우리 인간이잖아요. 슬프고 기쁘고 화나고 다양한 감정 느끼는 인간이잖아요. 그런데 왜 자꾸 감춰요? 그렇게 감추고 아무 문제 없는 척하면 누가 멋있데요?다들 괜찮아 보이길래 나도 그래야 하는 줄 알고 맨날 겉으로는 웃고 다녔어요. 가면 쓰고 다녔어요. 그래서인지 제가 심적으로 고통스러워 했다는 걸 주변 사람들이 잘 몰랐어요. 자주 함께 시간 보내던 플랫메이트도 저한테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던데요. 그만큼 제가 감정 숨기는데 능력이 있었나 봐요. 근데 그렇게 계속 ‘척’하면서 가면 쓰고 다니는 거 진짜 힘든 일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자존심에 그랬을까 싶어요. 그렇게 아무 말 안 하고 혼자 참으면 뭐 떡이 나오나요?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제가 유학생이라 하면(유학했다고 하면) 부럽다고들 해요. 제가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넌 행운이라며 그것도 감사해야 한다고. 저도 알아요. 저 엄청 운 좋은 케이스에요. 그렇다고 유학생들은 힘들어도 입 다물고 있어야 하나요? 직접 와서 겪어보세요. 마냥 좋은 거 아니에요. 유학생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어요.

전 심리학, 카운슬링 그런 거 전문적으로 배운 적 없어서 제대로 상담하는 방법은 모르겠어요. 그런데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건 확실해요. 너무 힘들면 터놓고 이야기하세요. 그렇게 해도 괜찮아요. 내가 그렇게 하면 상대방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사람들 그렇게 안 봐요. 오히려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서 고맙다고 할지도 몰라요.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분들은 페이스북에 ‘유학생 우울’이라고 치면 익명으로 이야기 보낼 수 있는 페이지 있어요. 아니면 저에게 인스타그램 메시지, 페북 메시지, 이메일로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셔도 돼요. 꼭 유학생 아니어도 제 글에 공감하신 분들 모두 환영이에요. 제가 얼마나 힘이 되어 드릴진 모르겠어요. 그래도 모르는 사람에게라도 시원하게 이야기하고 나면 기분이 나아질 거에요. 이렇게 작은 에너지가 모여서 다시 버텨보려고 하는 힘을 얻게 되는 거죠.



지금 저랑 같이 사는 사람은 영국 청소년 자선단체에서 운영하는 전화 상담(Helpline) 자원봉사 10년 동안 했어요. 거기엔 자살하기 직전에 처한 청소년들한테 전화가 온데요. 가족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등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한테.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주말엔 쉬고 싶을 텐데 그걸 왜 하는지 물어보니까 자기 인생에 있어서 고등학생 때랑 대학생 때가 가장 괴로운 시간이었데요. 스트레스 풀 곳도 없고 자기 이야기 들어줄 사람도 없고 너무 힘들었데요. 그래서 자기처럼 힘들었던 사람들 도와주고 싶어서 시작했데요. 왜냐하면, 그들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으니까. 자기도 비슷한 상황에 있었으니까.

저도 비슷해요. 나도 비슷한 상황에 있었으니까. 그게 얼마나 괴로운지 아니까. 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사는 거 솔직히 힘들어요. 매일 바보가 된 느낌. 그거 견디기 힘들어요. 내가 영어만 좀 더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몇 년 더 살면 좀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산 넘으면 또 다른 산이 있던데요.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은 ‘척’하는 게 더 힘들어요. 저도 그렇게 ‘척’하고 살다가 결국 우울증이 왔어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우울하고 슬픈 감정이 파도처럼 몰려와서 온몸을 휘감는 듯한 느낌. 그 감정들이 내 몸에 달라붙어서 3개월, 6개월, 1년 넘게 내가 안고 가야 할 때. 그땐 가위로 그것들을 잘라버릴 수 있다면 잘라버리고 싶었어요. 그 망할 무기력감..

너무 힘들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세요. 익명으로 메시지 보내는 것도 좋아요.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거 그거 쪽팔린 거 아니에요. 자긴 괜찮다면서 허세 떠는 사람이 멋진 게 아니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분이 멋진 거에요. 용기를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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