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에게 쓰는 편지 – 다이어리 & 생각 노트

우리 조카. 이모가 너에게 배우는 게 많단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장기간 머물렀을 때, 너도 내가 낯설었던 것처럼 나도 네가 낯설었단다.

내가 영국에 간 뒤, 네가 태어났고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지 못했지.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갔더니 그새 이만큼 자란 5살짜리 아이가 집에 떡 하니 있는데 너를 보는 나도 어색했어.

너를 보면서 아이는 새하얀 도화지와 같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처음 깨달았단다.

별거 아닌 일에도 까르르 웃는 너의 웃음에 나도 전염이 되어 웃게 되었지.

아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고 예쁘다는 걸 너를 보고 처음 알게 되었어.

노동하는 어른의 시각에서,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기까지 먹고, 블록 놀이 하고, 자고, 로봇 놀이하고, 먹고, 자는 너의 모습을 보면서 신기했단다.

할머니가 하는 이야기처럼, 5살 꼬마 아이에게 주어진 일은 바로 `놀면서 자라는 게` 너의 일이었지.

너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오는데 그땐 겨울이었어.

그때만 해도 넌 말을 잘 못 했었지.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아파트 단지에 있는 나무는 조명 장식을 달아서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어.

자동차 창문에 붙어서 그걸 보며 “예뻐, 예뻐”를 연발하는 널 보는데 저 쪼그만 아이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단다.

네가 어른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랑을 주니 너는 사랑을 두 배, 세배로 주더라.

할아버지가 널 매일 업고 다니고, 네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도 다 들어주고, 어떤 질문을 해도 어린아이 시각에 맞춰서 차근차근 설명해주었지.

네가 한 살, 두 살 먹으면서 그런 할아버지를 끔찍이 생각하고 돌보고 있더라.

할아버지가 분리수거하러 갈 때,

쪼그만 게 힘이 없어서 박스 들지도 못하는데 도와드린다고 같이 가자고 하며 따라가고, 할아버지 대화 상대 해드리고, 할아버지 외출해서 돌아올 때마다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고. .

네가 아파서 밤새 우는 바람에 가족들은 한숨도 못 자던 날이 있었어.

널 새벽에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약을 타오고, 약을 먹는 걸 힘겨워하는 널 안고 달래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단다.

난 이모니까 졸리면 자도 되지만 너의 엄마는 엄마이기에 끝까지 널 책임지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돌봐야 했지.

내가 너와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난 네가 하는 말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어.

근데 고작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넌 문장을 구사하게 되었고 발음까지 또렷하게 하는 걸 보면서 짧은 시간에 언어 실력이 느는 속도에 놀랐단다.

어른이 외국어를 배워서 실력이 느는 과정과 다를 게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

네가 처음 보는 공룡을 종이에 그려서 보여줄 때마다 어린아이의 상상력에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

“나중에 공룡 카페를 운영해보는 게 어떨까?”라고 제안했을 때, 공룡 빵도 만들고, 공룡 캐릭터도 만들고,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홍보할거라고 네가 말했었지.

네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쁜 말이라도 배울까 봐

“넌 나쁜 말 배우면 안 된다. 이모가 걱정된다…ㅜㅜ”라고 하자,

“응, 나 나쁜 말 안 배울게.”라고 말해줘서 안심되었어.

말이라도 그렇게 해줘서 고마웠다.

이모는 너의 입에서 험한 욕이 나오는 게 상상이 안 되거든.

난 어렸을 때 학교 가는 게 싫었는데 넌 혼자 아침에 일찍 일어나 씻고 밥 먹고 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학교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네가 자랑스러웠어.

드론 만드는 법이랑 바둑 두는 법도 배우고, 요리하는 것도 배우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는 것 같아 무척 기쁘단다.

사실 너랑 놀아주는 게 성가실 때도 있고, 쉴 새 없이 말하는 네가 힘들 때도 있었어. 근데 네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넌 그 자체만으로 귀한 존재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덧셈, 뺄셈 못해서 혼났다던데 그거 못해도 상관없다)

이모는 너에게 많이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단다.

고맙다 짜식.

2 comments Add yours
  1. 저랑 비슷하시네요! 저도 유학오고 몇 개월이 지나 조카가 태어났어요. 그리고 2년이 지나 둘째 조카도 태어났고요. 생일, 크리스마스 선물은 보냈지만 너무 오랜만에 보니까 처음엔 항상 어색해하더라고요 🙂 방학 때 한국 갔을 때 조카 등원과 하원을 시키기도 했죠.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 놀기도 하고. 조카가 자라나는 걸 보면서 많이 웃었어요. 저희는 가족카톡이 있는데 거기에 사진과 동영상이 올라와요. 첫 걸음마, 더듬더듬 말하다가 유창하게 말하던 순간, 초등학교 입학 등. 저희 조카들도 할아버지를 잘 따라요. 아빠가 조카들 덕분에 웃는 일이 더 많아지셨죠.

    1. 댓글 감사합니다. 통로님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시군요!. 🙂 맞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 조카도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많은 행복을 주고 있답니다. 나이가 어린데도 자기 엄마랑 할아버지, 할머니를 얼마나 아껴주는지. 너무 예뻐요. 저도 한국에 있을 때 놀이터에 데려가고 유치원에서 픽업도 하고 그랬었어요. 그런데 또 멀리 떨어져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까 전화 통화할땐 쑥쓰러워서 말을 많이 안하더라구요. 내년에 보러 갈땐 얼마나 더 커있을지 궁금해요.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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