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 다이어리 & 생각 노트

2주 전, 모노클 팟캐스트를 듣는데 최근에 타계한 독일계 영국인 일러스트레이터 Judith Kerr 인터뷰가 방송되었다.

베를린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렸을 때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녀는 드로잉에 재능이 있었고 아트 스쿨에 진학하고 싶었다.

아트스쿨에 다니려면 장학금을 받아야 했는데 장학금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은 반드시 `영국에서 태어난` 영국인이어야 했다.

그녀는 영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으나 독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장학금을 받을 자격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트 스쿨에 지원했고 인터뷰에 초대된다. 그녀의 포트폴리오를 훑어본 심사위원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쉽지만 이 장학금은 영국에서 태어난 사람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녀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심사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장학금을 받을 기회를 함께 찾아봅시다.”

결국, 그 심사위원 덕분에 그녀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고 아트 스쿨을 다니게 되었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 모든 게 운(luck)이 굉장히 좋았다고 말한다.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장학금을 받을 수 없었고 학교도 못 다녔을 거라고.

MIT Technology Review에 흥미로운 기사가 떴다.

인간의 운과 능력이 성공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는데, 능력이 평균적이어도 운이 좋은 사람들이 높은 성공을 이룬다는 결과가 나왔다.

우리는 흔히 노력(재능/능력)만 하면 모든 게 잘 풀릴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운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야기.

내 주변에 영국에서 특별한 경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에 취업한 지인A와 이직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지원하고 있지만 아직 큰 성과가 없는 지인B가 있다.

두 사람 모두 능력이 좋고 열심히 취업/이직 준비를 했다. 특히 이직을 준비하는 분은 훌륭한 이력과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력을 더 하면 더했지 결코 덜 하지 않았다.

대기업에 취업한 지인은 리크루터가 오래전에 넣었던 지인의 이력서를 발견하고 한참 후에 (이력서를 넣은 것도 잊어버릴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연락이 와서 인터뷰하자고 했다고 한다.

즉, 이 분은 운이 좋았다.

이직을 준비하는 분은 아직 그 운이 오지 않았을 뿐이다. (이 분은 앞으로 잘 되거라 확신한다.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자질을 지닌 분이기에.)

이런 사례를 보면, 결과만으로 상대방 노력의 크기를 함부로 판단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운이 좋으면 생각지 못한 곳에서 기회를 주는 사람을 만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시류를 제대로 탄 덕분에 사업이 상승주가를 올려 부를 쌓기도 한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오롯이 자신의 실력과 노력으로 지금 누리고 있는 걸 성취했다는 자만에 빠지는데 이건 매우 편협한 자세다.

시간이 갈수록, 주변 사례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봐도 인생은 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종 어르신들이 지금 잘 나간다고 자만할 일도 아니고 지금 못 나간다고 낙담할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렇게 말한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

#덧붙임

인생이 운으로 결정된다는 말에 자칫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다.

운이 중요하지만, 그 운을 가져오게 하는 노력과 자세도 여전히 중요하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내가 아는 또 다른 지인은 곧 퇴직할 예정인 상사가 있었는데 대부분 `이 사람은 어차피 나갈 거니까`라고 생각하며 아무도 그 상사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퇴직 여부 상관없이 지인은 상사를 성심성의껏 대했고 일도 성실하게 했다고.

막판에 그 상사가 회사를 떠나기 전, 지인을 인사과에 강력히 추천해서 승진을 한 케이스가 있었다. (크…..)

언제 운이 올지 모른다. 평소에 성실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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