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우울증 초기 단계

우울한 감정이 몸 구석구석을 휘감고 있는 듯한 느낌. 이게 한순간이 아니라 6개월, 1년 이상을 아침, 낮, 저녁, 24시간 내내 사라지지 않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힘들어도 항상 파이팅을 외치며 힘차게 나아갔던 나였다.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볕들 날이 있을거야’라며 앞만 보며 달려왔었다. 그런데 이 파이팅이 약해지면서 더이상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고 이제는 주저앉고 싶어졌다. 보통 우울한 감정이 일시적으로 생기면 몇일 뒤에 사라지는데 이번 경우엔 그렇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 많이 힘들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칼바람이 부는 가파른 언덕길에서 휘청거리며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느낌이었다. 그냥 툭치면 쓰러질 것 같았다. 아무 이유없이 눈물이 자꾸 나왔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의욕도 사라졌다. 외국에서 가족도 없이 이방인으로서 모든 걸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이 생활을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우울증을 스스로 진단하는 방법이 있었다. 리스트에 있는 대부분이 내가 가지고 있는 증상과 같았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우울함을 더 이상 못견딜 것 같았다. 이 망할 우울한 감정을 표출하지 않으면 주저 앉아버릴 것 같았다. 보통 운동을 하고 나면 한결 나아지기에 헬스장에 갔더니 그 곳에 있는 TV 스크린과 사람들을 보고 갑자기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았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억지로 괜찮은 척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항상 울고 있었다. 고심한 끝에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상황을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페이스북에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써서 올렸다. 전화로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이야기했다. ‘내가 원래 이렇지 않는데.. 힘든 일이 있어도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나는데 이번에는 이상하다. 우울함이 지속된다. 그리고 이제 좀 쉬고 싶다’ 라고.

지금에 와서 우울증이 왔던 이유들을 생각해보면;

  • 갑상선 암 수술을 한 사람들은 호르몬 때문에 우울증이 남들보다 쉽게 올 수 있다고 한다. 난 갑상선 암 수술을 한지 얼마되지 않아 영국으로 와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 약해진 면역력과 건강상태: 당시 나의 건강상태는 엉망이었다. 음식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고 깊은 수면을 취하지 못했으며 잠자는 중간에 자주 깨어났다.
  • 엄청난 스트레스: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어깨에 짊어지고 높은 산을 쉼 없이 오르는 느낌이었다. 해야할 일들, 벌려놓은 일들이 너무 많았다. 인턴십, 학교 과제들, 프로젝트들. 7일 24시간 풀가동이었다. 곧 이것은 번아웃(burnout) 상태로 이어졌다.
  • 난 힘들어도 남들에게 툭 터놓고 이야기하는 편이 아니었다. 내가 우울한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거라는 생각이 컸다. 매일 장애물과 싸우고 오뚝이처럼 일어나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는 일에 익숙해졌지만 그만큼 마음도 지쳐가고 있었다. 그래도 솔직하게 툭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사람은 가족 중에 아빠였다. 아빤 고독함이 어떤 것인지 인생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 나의 능력에 대한 실망감: 함꼐 일하는 동료들과 신속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말하는 걸 제대로 캐치하지 못할 때마다 나의 능력을 탓하기 시작했다. ‘모국어가 영어였더라면 정말 잘해냈을텐데’ 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영어로 충분히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됨에도 불구하고 현지인의 능력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심각하게 우울한 감정들이 1년 이상 지속되자 정말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에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큐레이팅 에이전시에서 일하고 있었고, 진행 중이던 졸업 프로젝트를 끝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하는 상황에 있었다. 다른 이들은 논문을 제출하고 자유를 누리고 있었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정신적인 상태가 어떠하든 이 일들을 끝까지 마무리해야 했다.

프로젝트를 모두 무사히 마친 후 나를 짓누르고 있던 이 망할 우울함을 안고 (정말 벗어나고 싶었다) 한국행 비행기로 몸을 실었다. 한국에 오고나서 드디어 아무런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먼저 부모님에게 내가 어떻게 살았었는지, 지금 상태가 어떤지 설명했다. 또한 무언가 하고싶은 의욕도 없고 무조건 쉬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국에서도 여전히 시도때도 없이 우울했고 눈물이 났다. 영국에 있을 때와 달랐던 점은 한국에 있는 동안 울고 싶을때마다 울었다는 것이다. 부모님과 병원에 가기 위해 차를 타고 가면서도 울었고, 밥을 먹다가도 울었고, 가족들과 이야기 하다가도 울었다 (이것은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건강검진을 받고, 마사지를 정기적으로 받으러 다녔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요가를 시작했다. 나의 상태는 순식간에 좋아지지 않았다. 1달, 2달, 3달, 4달.. 아주 느린 속도로 증상이 호전되었다. 그 뒤로 시간이 꽤 지났고 지금은 많이 안정된 상태에 있다.

병원에 가서 의사로부터 우울증이라고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우울증 초기단계를, 또는 비슷한 증상을 겪어왔다고 생각한다. 이제 한국에서도 우울증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 우울증은 누구나 겪을 수 있고 이런 경험을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훨씬 더 부정적인 상황을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1. 주변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 다른 사람들에게 우울한 감정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는 상대방이 나로 인해 불편해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에게 열려 있었고 그들과의 대화가 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

최근에 보았던 영국 Channel 4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24 Hours in A&E’ 에 나온 한 청년의 사례를 소개한다. (A&E는 Accident & Emergency의 줄임말로 응급실을 뜻한다.) 응급실에 칼로 자기 몸을 찌른 대학생 청년이 실려왔다. 그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겪고 있었다.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그 청년은 차분하고 진실하며 의지할만한 존재였다면서 그가 그런 힘든 상황을 겪고 있었다는 걸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청년은 다행히 심각한 부상을 입지 않았고 무사히 퇴원한 후, 대학교에 있는 심리 테라피스트와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고 있다.

이 청년을 진료했던 의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에게 ‘How are you?’ 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good, 또는 great’ 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속마음과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좀더 솔직하게 그것들을 표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벌어질 (자살과 같은) 훨씬 더 심각하고 부정적인 상황을 예방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2.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다면 받도록 하자

: 과거로 돌아간다면 학교에서 운영하는 카운슬링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 한국에 있는 대학교는 잘 모르겠지만 영국 대학교는 학생들의 심리 상담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다. 학교 안내 데스크나 홈페이지를 통해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직접 만나서 상담하는게 꺼려진다면 ‘트로스트’와 같은 온라인/모바일 심리상담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도 좋다. (비용은 직접 만나서 하는 상담보다 저렴한 편이라고 한다.)

3. 운동 시작하기

: 베른 대학 연구팀은 신체 활동이나 운동을 하는 것이 항우울제와 같은 신경 생리학적인 변화를 가져와 우울증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관련 포스트]




4 comments Add yours
  1. 저는 현재 22살 미국에서 유학 중인 여학생입니다.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제 모습이 많이 겹쳐지네요. 저도 지금 우울증으로 힘들어하고있습니다. 학기 중엔 부정적인 감정들을 꾹꾹 참아내고있다가 방학 때 울면서 지내거든요. 혼자서 그렇게 1년 반을 지내다가 너무 힘들어서 요번 여름방학 땐 심리상담을 받고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작가님이 어떤 마음으로 우울증을 이겨냈는지 조금 더 알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

    1. 먼저 답글이 늦어서 죄송해요.

      지금 많이 힘든 단계를 겪고 계실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시에 저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매일 울고 있었거든요. 어떤 마음으로 우울증을 이겨냈느냐 라는 질문에는….

      초반에는 자신감 없고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저 자신을 보면서 저의 능력에 대한 실망감과 자괴감이 꽤 컸었어요. 한국에 있었을 땐 이런 바보 같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여기로 오면서 어딘가 많이 모자란 것처럼 느껴졌어요. ‘외국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야 생각으로 당시에 저 자신을 달랬어요. 그런데 유학 생활을 계속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더니 여전히 저의 못난 점만 보이는 거예요. 생각해보면 전 저 자신의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고, 완벽주의가 있었어요. (유학 생활 하다 보면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들 많이 보이잖아요. 나만 못하고 있는 것 같고) 그런데 이런 높은 기대치와 완벽주의가 저 자신을 숨도 못 쉬게 하고 죽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조금씩 저 자신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기로 했어요. 예를 들면, 제가 실수를 했을 때 자신을 학대하는 대신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이 정도 하는 게 어디야, 충분해’라고 계속 스스로 말했어요. 말의 힘이 있다고 하잖아요. ‘자신을 소중히 여기자’라는 마음가짐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울증이 아주 심해지면 어떤 위로를 들어도 힘이 되지 않을 때가 있어요. 전 한국에 머무는 동안 많이 치유된 편인데요. 전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건강도 너무 안 좋았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 몇 달간 정말 아무 일도 안 했어요. 계속 병원 다니고, 가족들에게 얼마나 힘들었었는지 말하고, 울고 싶을 때 펑펑 울고. 조금씩 서서히 좋아지더라고요.

      저의 이야기가 은선 님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울증 꼭 극복하고 유학 생활 끝까지 잘 마무리하시길 바라요.

      댓글 남겨줘서 고마워요.

  2. 안녕하세요, 미국에서 학부 유학을 하고 있는 23살 여학생입니다. 저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 대학교에 진학했을 때, 1학년 마치고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치료하느라 1년동안 학교를 쉬고 한국에서 지냈어요.
    그리고 복학하고 2학년을 다니고 있는데, 외국생활하면서 겪는 어려움과 서러움에 건강하고 긍정적이게 맞서는 법을 많이 터득한 까닭에, 지금은 많이 나아졌네요.
    1학년 때 생각하면 그 어린나이에 (지금도 어릴 수도 있지만) ㅎㅎ 왜 그렇게 제 자신에게 모질고 차가웠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종종 듭니다. 여기에 유학생활 관련해서 기재해주신 포스트들 보면서 많이 공감하고, 또 조언도 잘 얻어갑니다. 영국에서 예술 관련해서 멋진 열정을 갖고 꿈을 쫓는 모습 너무 멋있어요! >_< 종종 또 놀러올게요!

    1. 안녕하세요 주영님, 댓글 감사합니다.
      주영님도 유학 생활을 하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셨군요. 그래도 현재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건강하게 유학생활을 하고 계시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또한 제 블로그 포스트에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영님 댓글 보고 저 또한 좋은 힘을 얻고 가네요. 그럼 종종 소식 들려주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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